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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翰林院1월산행(남산둘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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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8 
일시:2018년 1월27일(토요일) 崇禮門앞에서 10시에 집합
인원:함현찬 교수님 한 분 외 9명 총:10명
산행코스:숭례문,출발~남산공원~안중근 기념관~남산 팔각정~
봉수대를 둘러보고~국립극장건너편~성곽길을 따라~장충당공원하산
하여 족발로 점심 식사를 하고 ㅎㅎㅎ
노래방까지 완벽한 즐거움이었습니다.
회장님께서는 추운 날씨 관계로 뒷풀이 장소로 오셨습니다.
교수님께 감사드리며 翰林院 산악회에도 사랑으로써 보듬어
주시는 동창 회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산행에 동참해주신 학우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이성호 교수님께서 빨리 쾌차하시길 기원합니다.
교수님 잘 다녀왔습니다.
이 예쁜 어린이는 황영숙 선배님의 손녀 예림양입니다
할머니 닮아서 씩씩하고 산행도 무리없이 잘 따라 다니는
예쁜 어린이었습니다.
하얀 눈길을 걸으며 탁했던 마음도 정화시키며.....
기온이 영하의 날씨도 숫자에 불가 코끝에 스치는 상쾌함은
추위를 이깁니다.
이런 느낌이 어떤건지 함께 느껴보시지 않으실래요?^^*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인 省齊 李始營 先生 像
일제강점기 나라의 독립과 통일민족국가 건설을 위해
투쟁하고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했던 독립운동가
백범일지:상,하권으로 구성된 김구 선생의 친필 자사전으로
임시정부에 관함과 독립운동사에 귀중한 자료
전에는 아~ 그렇구나하고 지나쳤던 길이라면
翰林院을 다니고 있는 지금은 더욱 관심을 같고
먼곳에서 방관하며 지나쳤었다면 지금은 가까이가서
한글자씩 의미를 새기며 깊은뜻을 마음속에 새기려고
노력함이변했다고나 할까요
교수님들과 함께 산행을 하면서 많은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사찰에가면 현판의 의미를 ~역사의 발자취가 있는 곳에가면
그분의 살아오신 업적을 가르쳐주십니다.
유익한 산행입니다.
봉수대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급한 소식을 전하던 옛날의 통신수단을 말한다.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남산 봉수대는 조선 태조 3년(1394)에 도읍을 한양으로 옮긴 뒤 설치하여, 갑오경장 다음해까지 약 500년간 사용되어 왔다. 남산의 옛 이름을 따서 목멱산 봉수대라 하기도 하고, 서울에 있다하여 경봉수대라 부르기도 하였다. 평상시에는 1개, 적이 나타나면 2개, 적이 경계에 접근하면 3개, 경계를 침범하면 4개, 경계에서 아군과 전투를 벌이면 5개의 불을 올리도록 하였다. 남산 봉수대는 전국의 봉수가 도달하게 되는 중앙 봉수대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던 곳이다. 동쪽에서부터 서쪽으로 향하여 5개소가 있다
* 면적/수량 - 237.27㎡ (연대 5개)제1봉수대는 명철방(明哲坊: 오장동 부근)에 닿으며, 양주 아차산(봉화산)봉수대와 연락되었다. 제2봉수대는 성명방(誠明坊: 묵정동 부근)에 닿으며, 경기 광주의 천천(穿川: 천림산) 봉수대와 연락하게 하였다. 제3봉수대는 훈도방(薰陶坊: 예장동 부근)에 닿으며, 무악 동쪽 봉우리의 봉수대와 연락하게 하였다. 제4봉수대는 명례방(明禮坊: 명동 부근)에 닿으며, 무악 서쪽 봉우리의 봉수대와 연락하게 하였다. 제5봉수대는 회현방(會賢坊: 회현동 부근)에 닿으며, 양천 개화산 봉수대와 연락을 주고받게 하였답니다.
예쁜아이 8살 예림이가 찍어준 소중한 사진입니다!!!
예전에 翰林院에서 성곽돌기 할때 갔던 장충동 족발집을
옛 기억을 더듬어서 다시 찾아간 곳입니다.
함께하면 새로운 사랑이 솔솔피어나고 더욱 친밀감이
돈독해지는 즐거운 시간입니다.
오늘의 산행 일정은 여기까지입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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